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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간 前 김해시장 역사수필집 출간
    • 조민규 기자
    • 승인 2018.10.05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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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기념회 6일(토요일) 오후 2시30분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열려

    "1300리를 흘러오는 낙동강이 마르지 않는 한, 가야사는 결코 어둠에 묻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고 가야의 역사와 문화의 모태인 낙동강이 쉬지 않고 흐르기에 가야사의 어둠은 꼭 밝혀질 것입니다."

    범송 김종간 前 김해시장이 최근 펴낸 글집 <가야가락금관 그리고>(도서출판대건 刊) 서문이다.

    그는 금관(金官)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가야제국의 종주국 이었던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된 후 신라의 자치주 이름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금관의 뜻은 벼슬(왕)을 했던 김수로의 후손과 그 백성들이 살아가는고을이라고 법흥왕이 내려준 것이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즉 쇠(철)를 잘 다루는 가야인들을 나라 잃은 슬픔을 금관이란 이름으로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간결한 서문에서 보다시피 역사성이 짙게 베인 진정성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바탕으로 가야인의 내면세계를 곳곳에서 토해냈다.

    그래을까, '가야의 종주국 가락가야', '구지봉에서 부른 민주 노래'. '가락국 시조릉', '흘러 흘러 1천3백리 도요진, 뇌진, 황산강', '가락국 주산 분산 분산성, 만장대, 타고봉', '불우(佛宇)에서 부른 노래 감로사, 금상사, 구암암, 은하사, 장유암'제1장부터 제6장까지 구성했다.

    제7장부터는 '도읍의 정자(亭子) 연자루, 함허정, 산해정', '금릉의 노래 금릉팔경, 금릉팔적', '산과 물의 대(臺) 초현대, 산산대, 봉황대, 영모대, 외장대', '물의 노래 호계천, 남포연가, 칠점산의 노래, 금천교, 명호', '아쉬움을 더하며 객사의 밤회포, 사마소(司馬所), 차판상운', '21세기 금바다 산에서 부른 노래' 등 장장(長長) 총 12장으로 편성했다.

    더욱이 저자는 이 책에 대해 "김해의 아들로 감사하며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글을 썼다"며 "사연 많은 삶이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내 인생의 좌우명은 '십목소시(十目所視),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고 가야의 좌표을 확실히 찍었다. 

    이를 테면 역사적 사실과 신화ㆍ전설, 저자의 경험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소설적 서사성 등이 오롯이 드러낸 것이다. 

    "일찍부터 가야의 젖줄 낙동강을 좋아했습니다. 낙동강 지류인 화포천 남쪽 상류지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낙동강의 고마움과 무서움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이번 출판은 '김해시장'이라는 타이틀을 멀리 벗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마을에서 낙동강까지 이어진 동서남북의 산하가 산봉우리만 남긴 채 모두 광활한 황토바다를 이루면 뒷산에 올라 신나게 바라보았던 동심의 세계를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저자는 30여 년 전 청년시절 향토사 공부를 시작했으며 앞서 몇년전에는 왕성한 행정가 이면서 문학가로서 작가의 이력은 화려하다.

    "낙동강은 가야, 신라의 탄생과 흥망을 함께 하면서 벼농사, 김해토기, 철기문화 등 영남 일대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누비고 일본 열도에 문명의 불씨를 전한 찬란한 문화를 활짝 피웠습니다."

    그는 가족과 국가, 수필, 역사, 통일 등 다방면의 소재들을 스스로 보고 느낀 대로 정확하고 깊지만 유쾌하게 글로써 풀어냈다.

    이른바 수필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성실한 행보는 글 내용이나 분위기를 떠나 행복한 기운을 표출하고 있었다.

    저자는 "우리는 때로는 자랑스럽고 때로는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다"며 "중국과 몽골이 침탈하고 프랑스와 미국,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도 겪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이 나라를 지켰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앞세운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 등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낼 때마다 '그래도 가야는 늘 여기에 있었다'고 바보스럽게 외쳤다"고 겸손하게 평가했다.

    '가야는 들먹이면 들먹일수록 미친짓'이라며 냉소한 어떤 학자를 향해 '가야는 여기에 있었고, 여기에 있다'고 미친(美親) 소리를 뜨꺼운 목소리로 토로한 것이다.
     
    발문을 쓴 신경철 부산대 명예교수는 "당시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었음에도 대도시나 대학에서도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그가(김종간 김해시장) 가야사 국제학술회의의 출발시켰다"며 "그에 대한 평가와 시각은 다양하고 다각적일 것이다. 내가 경험한 그는 집중력이 뛰어난 집념 덩어리 그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의 인생에 좌절의 시기가 종종 있었음에도 그는 한번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고하여 매사를 낙관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신 교수는 또 "그에게 종교가 있다면 김해교(金海敎) 또는 가야교(加耶敎)임이 틀림없다"고 역설하면서 "그렇지 않고는 도대체 그를 이해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조영제 경상대 사학과 교수는 발간사에서 "금관가야의 역사를 이야기하기까지에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향토사학자이면서도 행정가였던 김종간 前 김해시장의 노고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어필했다.

    조 교수는 "일찍이 30여년 전 역사문화 전문지인 '가야(伽耶)'를 발행하여 일반인들의 관심을 고조시켰고,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모범적으로 그것도 해마다 진행되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칭송이 자자한 '가야사 국제학술회의'는 김종간씨가 없었더라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6일(토요일) 오후 2시30분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열린다. 

    한편 저자는 1985년 가야문화운동 제창이후 가야사랑 운동을 펼쳐온 향토사학가로 1986년 가야문화연구회를 창립했다.

    1987년 김해향토문화연구소 개소, 1987년 '가야의 얼을 찾아서'를 시작으로 '찾아야할 왕국',  '행복도시 김해 책에서 찾다', '가야천년 김해천년' 등 수많은 책을 편찬 발행했다.

    저자는 제11대 국회의원 비서관, 김해신문 발행인, 제5대 경남도의회 내무환경위원장, 향토문화연구소 소장, 가야대학교 겸임교수, 가야대 명예행정학박사, 제16대 김해시장(민선4기) 등을 거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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